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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생활/태극권

최강석코치의 중국태극권연수 (5)

by 미래창조코치 2011. 8. 31.

지난 6월 6일에 출발하여 13일까지 중국 하남성 진가구에 있는 진식태극권학교에서 진소성 노사로부터 태극권 지도를 받고 왔습니다.

1998년부터 태극권 수련을 띄엄띄엄 해오다가 작년부터 다시 꾸준히 수련해오고 있는데요.  이번 중국연수를 통해 태극권의 진수를 경험하고 새로운 맛을 느끼는 중입니다.

7박8일 중국연수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연재합니다.

최강석코치의 중국태극권연수 (4)   (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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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일 (2011년 6월 10일 금요일)


또 다른 수련장 용문석굴

 

“꼭대기까지 갔다 와야 해, 우리는 작년에 갔다 왔어.” 관장님과 이미 다녀오신 분들은 남고 올해 처음인 사람들만 석굴을 오르고 있다. 며칠간의 수련으로 다리 근육에 통증이 있지만 계단을 오르며 근육강화를 하고 있다. 여기가 오늘의 수련장인 셈.


(이수(伊水)강 건너편에서 본 용문석굴(서산석굴).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이 봉선사 석굴.)

 

용문석굴(龙门石窟)은 중국 중부의 하남(河南)성 낙양(洛阳)시 남부교외 12.5킬로미터, 용문협곡 동서 두 절벽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 서쪽의 2개의 산이 대치하고 있고 이수(伊水)가 사이로 흘러 지난다. 당나라 이후로 ‘용문(龙门)’이라고 많이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교통 요충지에 위치하고 산 좋고 물 맑고 기후가 적합해 문인 묵객들이 즐겨 나드는 명승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바위의 석질이 좋고 조각에 알맞아 옛사람들은 이곳을 선택해 석굴을 파기 시작했다. 북위 효문제(孝文帝, 기원 471∼477년) 시기부터 파기 시작해서, 400 여년에 거쳐 완성되었고 지금까지1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석굴은 감숙(甘肃) 돈황막고굴(敦煌莫高窟), 산서(山西)의 대동(大同) 운강석굴(云冈石窟)과 함께 중국 3대 석굴이며, 2000년 11월 30일에《세계유산명록》에 수록됐다.

 

(봉선사 석굴 앞에서 회원들과…)

 

남북 길이가 대략 1킬로미터, 현존 석굴이 1300여 개, 동굴 감실이 2345개, 시문과 비석조각이 3600여 점,불탑이 50여 개, 불상이 97,000여기나 있다고 하는데, 다 세어보지는 못했다. 불상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문외한의 눈에는 그 불상이 그 불상 같기도 하고 안내원과 안내판은 중국어로 되어 있다 보니 조금씩 흥미가 줄어들었다. 가장 큰 규모인 듯한 봉선사 석굴에서 단체 사진과 개인 사진을 찍고, 내려가서 빙과류를 먹었는데, 그게 더 반가웠다. 봉선사 석굴은 당나라 측천무후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불상의 얼굴은 측천무후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시원한 빙과와 함께 휴식을…)

 

‘이수’를 건너 맞은편 동산석굴도 둘러보고 ‘향산사(香山寺)’와 ‘백원(白園)’으로 향했다. 용문석굴에는 서산석굴과 동산석굴이 있는데 규모나 다양성 면에서 서산석굴이 압도적이며, 동산석굴은 별책부록 같은 느낌을 준다.

 


(‘동산석굴’, ‘향산사’, ‘백원’으로 넘어가는 ‘이수’ 다리 위에서…)

 

향산사는 말년에 ‘향산거사’로 불리운 ‘백거이(白居易, 772년 ~ 846년)’ 가 기거했던 곳이라고 하며, 그 옆에 위치한 ‘백원’은 ‘백거이’의 묘를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이다. ‘백원’에 있는 백거이의 묘 옆으로는 우리나라 ‘백’씨들이 와서 세운 추모비를 비롯하여 싱가포르 ‘백’씨들의 추모비와 일본사람들이 세운 추모비도 함께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백원’ 내 ‘낙천당(樂天堂)’에 있는 ‘백거이’ 상)

 

( 향산사 부근의 등산금지 푯말. ‘산을 오르지 마’ – 어따 대고 반말? )

 

 

낙양박물관(洛陽博物館)과 화궈(火锅)

 

낙양은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때에 이 곳으로 도읍을 잡아 생활했다는 말이 갑골문에 전해진다. 그리고 한(漢) 고조 유방(劉邦)이 세운 한나라 시기에 대도시로 발전하고, 황하 강을 통해 물자가 많이 들어와 경제적으로 발달한 도시로 거듭난다. 이후에도 조조가 세운 위나라 및 북위, 수나라 시기에도 수도로 역할을 하였으며, 당나라 이후에도 경제적 중심지로 활약하였다. 그런 만큼, 낙양에는 각 시기별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지금도 계속적인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다.

 

(낙양박물관 입구에서…)

 

지금의 낙양박물관은 기존 박물관 보다 훨씬 큰 규모로 작년에 새로이 완공되어 개관한 곳이다. 각 시대별로 전시관이 구성되어 있고, 최근에 개관한 곳답게 내 외부 모두 현대식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었다. 관리자도 각 전시실 별로 몇 명씩 배치가 되어 관리에 꽤나 신경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꽤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중국어로만 표기되어 있어 알기 어려웠다는 점이 아쉽다.

낙양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바깥은 완전히 땡볕이고, 우리가 타고 온 택시도 찜질방이 되어 있었다. 찜질방이 된 두 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시내로 들어가서 중국 술, 차 등을 쇼핑하였다. 먼저 술을 구매한 뒤, 관장님은 첫날 주문한 나무 빗 등을 찾으러 가시고, 나머지 일행은 차를 파는 곳에서 예쁘고 상냥한 아가씨의 차 대접을 받으며 관장님을 기다렸다. 가는 곳 마다 관장님의 탁월할 협상력으로 가격 흥정을 마무리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식사는 ‘화궈(火锅, 중국식 샤브샤브)’ 전문점으로 갔다. 이전에 왔던 일행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맥주를 곁들여 샤브샤브로 몸보신하고 내일의 수련을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맥주와 화궈로 재충전…)

 

…………문제해결코치 최강석의 중국 태극권 연수기.. 6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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